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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추천 45

한강 저녁의 대화 | 한강시집 현대시

저녁의 대화  죽음은 뒤돌아서 인사한다.『너는 삼켜질 거야.』검고 긴 그림자가 내 목줄기에 새겨진다. 아니,나는 삼켜지지 않아. 이 운명의 체스판을오래 끌 거야,해가 지고 밤이 검고검어져 다시푸르러질 때까지 혀를 적실 거야냄새 맡을 거야겹겹이 밤의 소리를 듣고겹겹이 밤의 색채를 읽고당신 귓속에 노래할 거야 나직이, 더없이,더없이 부드럽게.그 노래에 취한 당신이내 무릎에 깃들어잠들 때까지. 죽음은 뒤돌아서 인사한다.『너는 삼켜질 거야.』검은 그림자는 검푸른 그림자검푸른그림자

함께읽는시집 2024.10.21

박목월 나무 | 청록파 서정시 자유시

나무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다음 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를 뽐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함께읽는시집 2024.10.06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현대시 짧은시 사랑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날과 씨로 만나서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우리들의 꿈이 만나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어느 겨울인들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함께읽는시집 2024.10.02

강병인 글씨로 보는 나태주 대표 시선집, 서로가 꽃

서로가 꽃 저자 나태주, 강병인 파람북 2024-08-19 시 > 한국시    줄기차게 바빴던 추석 연휴를 보내고 나니 잠시나마 보류했었던 필사책 고르기를 드디어 마쳤습니다. 이번 달에는 자기계발서를 필사하려다 가볍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커 시집으로 고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분인 나태주 시인의 『서로가 꽃』입니다. 신간알리미를 신청해놔서 나태주 시인의 신간 소식을 곧장 접하고 있는데 비슷한 느낌으로 출간되는 책들이 많아 쏙쏙 골라서 구매하고 있는데 이번 책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서로가 꽃』은 대중적 캘리그래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는 영묵 강병인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41편의 시들을 아름답게 담아주었지요.    41편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들을 추..

모든도서리뷰 2024.10.01

간밤에 읽은 책 | 서로가 꽃

서로가 꽃​​우리는 서로가꽃이고 기도다​나 없을 때 너보고 싶었지?생각 많이 났지?​나 아플 때 너걱정됐지?기도하고 싶었지?​그건 나도 그래우리는 서로가기도이고 꽃이다   제비꽃 그대 떠난 자리에나 혼자 남아쓸쓸한 날제비꽃이 피었습니다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피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사랑이 아니다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사랑이 아니다금방 듣고 또 들어도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이 목소리 들었던가……서툰 것만이 사랑이다낯선 것만이 사랑이다​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다시 한번 태어나고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다시 한번 죽는다.   첫눈 같은​​멀리서 머뭇거리만 한다기다려도 쉽게 오지 않는다와서는 잠시 있다가..

간밤에읽은책 2024.09.29

이병률 당신이라는 제국 | 현대시 사랑시 짧은시

당신이라는 제국  이 계절 몇 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상현은 하현에게 담을 넘자고 약속된 방향으로 가자 한다 말을 빼앗고 듣기를 빼앗고 소리를 빼앗으며 온몸을 숙여 하필이면 기억으로 기억으로 봄날은 간다 당신이, 달빛의 여운이 걷히는 사이 흥이 나고 흥이 나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춤을 추고, 또 결국엔 울게 된다는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간곡하게 봄날은 간다 이웃집 물 트는 소..

함께읽는시집 2024.09.12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 현대시 투쟁시 짧은시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살아오는 삶의 아픔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서툰 솜씨로쓴다.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함께읽는시집 2024.09.10

이성부 벼 | 가을시 농촌시 짧은시

벼  벼는 서로 어우러져기대고 산다.햇살 따가워질수록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바람 한 점에도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이 넓디넓은 사랑,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이 피묻은 그리움,이 넉넉한 힘……

함께읽는시집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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