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절정 | 현대시 짧은시 좋은시 절정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함께읽는시집 2024.08.13
이해인 꽃멀미 | 이해인수녀 짧은시 좋은시 꽃멀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있는 것은 아픈 것,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함께읽는시집 2024.08.03
이해인 한 방울의 그리움 | 짧은시 좋은시 한 방울의 그리움 마르지 않는한 방울의잉크빛 그리움이오래 전부터내 안에 출렁입니다 지우려 해도다시 번져오는이 그리움의 이름이바로 당신임을너무 일찍 알아 기쁜 것 같기도너무 늦게 알아 슬픈 것 같기도 나는 분명 당신을 사랑하지만당신을 잘 모르듯이내 마음도 잘 모름을용서받고 싶습니다 함께읽는시집 2024.08.02
윤동주 해바라기 얼굴 | 짧은시 좋은시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해바라기 얼굴해가 금방 뜨자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누나의 얼굴얼굴이 숙어들어집으로 온다. 함께읽는시집 2024.07.31
윤동주 자화상 | 윤동주시 짧은시 좋은시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함께읽는시집 2024.07.31
윤동주 서시 | 짧은시 좋은시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함께읽는시집 2024.07.30
존 러스킨 사랑을 한다 | 사랑시 좋은시 짧은시 사랑을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불완전하기에 사랑을 한다사람이 완전치 못한 것은이미 하늘이 정한 일 인간 생활에 똑같이 스미는 원칙은서로 애써야 한다는 거야그리고 남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 완전이란 오로지 신에게만 있고사람은 다만 그에게 갈 수 있을 뿐이지 함께읽는시집 2024.07.30
김소월 가는 길 | 좋은시 이별시 짧은시 가는 길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 번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지저귑니다 함께읽는시집 2024.07.28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시 짧은시 좋은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라믈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안미옥 여름 끝물 | 현대시 여름 끝물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중력 공간에 두 눈을 두고 온 사람처럼무엇을 보려고 해도마음만큼 볼 수 없어서 그렇게 두 손도 두 발도전부 두고 온 사람으로 있다고 한다면 쓰지 않는 시간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이해가 될까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한껏 울창해져서어김없이 돌아오는 여름 불행과 고통에 대해선 웃는 얼굴로밖에 말할 수 없어서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 절반쯤 남은 물통엔 새의 날개가 녹아 있었다 걸을 때마다 여름 열매들이 발에 밟혔다언제부터 열매라는 말에 이토록 촘촘한 가시가 들어 있었을까 다정한 얼굴녹아버리는 것밟히는 것 그해의 맨 나중에 나는 것 우는 사람에겐 더 큰 눈물을 선물하고 싶다어느 것이 자신의 것인지 모르게 함께읽는시집 20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