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 이 한 줄의 시가 오늘의 나를 붙들었습니다.
오늘은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함께 읽으려 합니다.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해설 및 주제 분석
정지용의 『향수』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한국 현대시의 대표작입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반복 구절은 시 전체에 향수의 정서를 밀도 높게 쌓아 올립니다.
여기서 고향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존재의 근원이며 시간 속으로 흩어진 본래의 나를 끊임없이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시인은 고향의 풍경과 그 안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유년의 심상을 불러냅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랑, 소리, 냄새가 남아 있습니다.
■ 하나의 감상
이 시는 제 안에 있는 오래된 골목길을 생각나게 합니다.
지금 동네에서도 오래 살고 있지만 그 전에 살았던 동네에서 짧았지만 강렬한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골목길 곳곳에 이름만 부르면 냉큼 나온 친구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이 골목 앞으로 모이면 엄마들끼리 자연스레 모여 커피 한잔씩 마시던 모습…….
많은 것을 연상케 하다보니 그곳은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제 안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영혼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희한하게 『향수』를 읽고 나면 잠시 멈춰 서서 제 안의 가장 따뜻했던 순간을 다시 불러내고 싶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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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은 누군가의 마음을 데워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엔 김소월 시인의 「초혼」을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당신이 지켜온 믿음과 고요한 다짐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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