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
저자 사이먼 반즈
현대지성
2024-12-03
원제 : The History of the World in 100 Plants
역사 > 세계사
과학 > 식물
밀, 커피, 목화… 이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닌, 인류의 국경과 문명을 뒤흔든 조용한 권력이었다.
■ 책 속 밑줄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을 갖추고 자연을 뛰어넘은 고귀한 존재,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천사처럼 행동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세상을 우리 뜻대로 주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여전히 식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우리의 과거는 모두 식물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현재도 모두 식물과 관련이 있다. 식물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그 100가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는 나무와 함께 시작한다. 아마도 모든 역사가 그렇게 시작하리라. 우리의 족보를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보자. 증조부의 증조부의 증조부까지. 충분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수백 년이 아니라 수백만 년을 헤아릴 정도로 멀리 올라가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에서 보낸 조상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똑똑했고, 서로 마주 보는 양손의 엄지손가락으로 나뭇가지를 아주 잘 잡을 수 있었다. 세상을 입체적으로 잘 볼 수 있는 눈 덕분에 그만큼 나뭇가지 사이의 거리를 잘 판단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살았고, 놀랍도록 나무에 잘 적응해서 살았다. 정말 오랫동안, 매우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나갔다. 그런데 기후가 바뀌었다. 기후변화는 이 책에서 앞으로 거듭 등장할 주제다.
고흐가 아를에서 그린 해바라기 그림들은 모나리자만큼이나 유명하다. 각각의 그림은 티셔츠와 마른행주, 냉장고 자석 등 온갖 형태로 수없이 복제되어 너무 흔해져서 되레 해바라기라는 꽃 자체는 주목하지 못하기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통스러웠던 예술가의 신화 같은 삶이 아니다. 해바라기 그림은 환희가 얼마나 압도적인 감정인지, 그리고 그런 고조된 경험이 얼마나 끔찍하게 무너지기 쉬운지를 보여준다.
열대우림의 대규모 파괴가 이루어진 바탕에는 열대우림이 엄청나게 울창한 이유가 엄청나게 비옥한 땅 때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열대우림은 분명 온도와 습도가 아주 높고, 5,000만 년 이상 그러한 환경을 유지했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울창한 숲은 뒤얽혀서 놀랍도록 복잡한 상호 의존 체계를 이루었다. 열대우림이 울창한 이유는 토양 때문이 아니라 숲 그 자체 때문이다. 씨앗은 숲의 바닥에 떨어져 다시 싹을 틔운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숲을 파괴하면서 열대우림을 생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만들고 있다. 브라질너트를 먹으면서 열대우림이 다른 데서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크나큰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잠깐이라도 머리가 아닌 배로 느껴보자.
찰스 다윈은 파리지옥이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식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파리지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구운 쇠고기와 삶은 달걀을 먹였다. 널리 알려진 이후로 파리지옥은 인간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육식을 하는 그 식물의 특성을 더욱 확장한 식인 식물 이야기들도 나왔다. 존 윈덤의 1951년 소설 『트리피드의 날』을 읽거나 같은 제목의 1962년 영화를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무언가 막연히 위협적이고 겁이 나는 식물을 흔히 트리피드(triffid)라고 부른다.
매년 미국 전역에서 거대한 대형 트럭들이 벌들이 윙윙거리는 벌집을 센트럴밸리로 수송한다. 벌들은 그곳에 도착한 후 꽃가루받이를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인위적인 꽃가루받이 행사다. 이때 140만여 개의 벌집이 그곳으로 모여든다. 면적 4,050제곱미터당 벌집이 두 개씩 필요하고, 벌집 하나에 200달러의 비용이 든다. 최근 몇 년간 벌집 군집 붕괴 현상(꿀을 채집하러 나간 일벌 무리가 돌아오지 않아 벌집에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가 떼로 죽는 현상―옮긴이)이 일어나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벌집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현상은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간단한 해결책도 없다. 행사가 끝난 후 센트럴밸리를 떠날 때는 가져온 벌집의 3분의 1 정도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사라진 벌집의 수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 끌림의 이유
식물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었습니다.
문명의 탄생도, 전쟁도, 제국의 흥망도 식물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특히 인간의 탐욕이 식물을 거쳐 노예제와 전쟁, 중독과 착취로 이어지는 과정은한편의 문명 비극 같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식물은 우리에게 늘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문명과 생태의 교차점에서 한 줄의 식물 이름이 세계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무척 의미 있었습니다.
■ 간밤의 단상
우리는 식물을 종종 배경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는 그 인식을 단호하게 뒤집습니다.
모든 시작은 씨앗 하나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문명은 뿌리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들려줍니다.
밀로 시작된 고대 문명, 향신료로 열렸던 대항해 시대, 사탕수수와 목화로 확산된 노예제 그리고 오늘날 기후 위기의 중심에 놓인 아마존의 열대우림까지, 식물은 늘 역사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식물을 지배한 게 아니라 식물에 의해 문명의 방향이 좌우되어 온 셈입니다.
서울대공원 식물원에 갈 때마다 느꼈던 조용한 설렘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 발길이 드문 그곳에서 저는 매년 시간을 보냅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꼭 가려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식물의 은혜 속에 살고 있는 걸까?
그 식물들은 어떤 시간과 고통을 지나 지금 여기에 다다른 걸까?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실감하게 됩니다.
■ 건넴의 대상
역사와 자연을 함께 읽고 싶은 분
세계사의 이면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맥락을 알고 싶은 독자
식물, 생태, 환경에 관심 있는 교양 독자
조용한 아침에 생각을 넓히고 싶은 모든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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