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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저녁의 대화 | 한강시집 현대시

하나의책장 2024. 10. 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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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대화

 

 

죽음은 뒤돌아서 인사한다.

『너는 삼켜질 거야.』

검고 긴 그림자가 내 목줄기에 새겨진다.

 

아니,

나는 삼켜지지 않아.

 

이 운명의 체스판을

오래 끌 거야,

해가 지고 밤이 검고

검어져 다시

푸르러질 때까지

 

혀를 적실 거야

냄새 맡을 거야

겹겹이 밤의 소리를 듣고

겹겹이 밤의 색채를 읽고

당신 귓속에 노래할 거야

 

나직이, 더없이,

더없이 부드럽게.

그 노래에 취한 당신이

내 무릎에 깃들어

잠들 때까지.

 

죽음은 뒤돌아서 인사한다.

『너는 삼켜질 거야.』

검은 그림자는 검푸른 그림자

검푸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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