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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읽는시집 46

나태주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 나태주시 사랑시 짧은시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사랑이 아니다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 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사랑이 아니다금방 듣고 또 들어도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이 목소리 들었던가……서툰 것만이 사랑이다낯선 것만이 사랑이다 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다시 한번 태어나고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다시 한번 죽는다.

함께읽는시집 2024.09.05

김영랑 거문고 | 김영랑시 현대시 자유시 짧은시

거문고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老人)의 손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땅 우의 외롱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 떼만 몰려다니고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 떼들 쏘다니어내 기린은 맘 둘 곳 몸 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함께읽는시집 2024.08.21

김영랑 오월 | 김영랑시 서정시 짧은시

오월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바람은 넘실 천 이랑 만 이랑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암컷이라 쫓길 뿐수놈이라 쫓을 뿐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함께읽는시집 2024.08.20

고은 머슴 대길이 | 현대시 짧은시 좋은시

머슴 대길이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상머슴으로누룩 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머슴방 등잔불 아래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어린 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읽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흩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

함께읽는시집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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