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온 시간은 전부 내 힘이었다
저자 신하영
딥앤와이드(Deep&WIde)
2025-01-06
에세이 > 한국에세이
"두고 보세요. 다 잘될 겁니다. 씩씩하게 계세요. 곧 좋은 미래가 찾아올 겁니다. 이렇게만 말해주고 싶은데 인생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당신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겁니다. 시련을 겪으며 보이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내 삶에 더 열정적이고 쉬운 것만 택하는 낙오자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이 이긴 겁니다. 1년 전과 오늘을 비교해 보세요. 우린 더 단단해졌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어른이 됐습니다."
친구야, 나는 가끔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고 싶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게 아니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토마토를 베어 물고, 어딘가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어. 조금 쉰다고 해서 조급함을 느끼거나 해야 할 일을 의무적으로 떠올리기도 싫어. 그냥, 가지고 있는 돈과 내가 가진 시간을 소모하며 적당히 하루를 살아가는 거지. 분명 여백이 가득할 거야. 나를 괴롭히던 강박에서 벗어났으니 말이야.
나는 우리가 더는 단면적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은 넓고 마음속에 일말의 순수함이 남아 있으니 말이야. 너무나 빠른 세상에 뒤처지는 것 같다고 한탄하기보단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못한 내 나약함을 탓하자. 사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우리에게 기회는 다시 올 거야. 그땐 더는 고민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해.
우린 아직 뭐든지 할 수 있어.
괜찮지 않은 내가 묻는 안부는 가림막에 불과하다. 이 부정을 절대 전염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면서도 아등바등 사는 나를 누가 좀 알아봐 주고 다독여줬으면 싶다. 모순에 모순이 더해져 망가진 감정 상태가 무르익으면 내가 경멸스러워 코가 시릴 정도다. 그때 알았다. 예민함의 끝에 도달하면 그냥 눈물이 나오는구나. 너무 나약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구나.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잡념에 빠지다 늦은 새벽에 겨우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 표독스러운 피로를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더 이상의 방도는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점심을 먹고 일하다 허공을 응시하면 빨리 감기를 하듯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책상에 있는 노트에서 예전에 적어놓은 한 명언을 발견한다.
"예민한 마음은 상처받기 쉬우나,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_엘리자베트 길버트
멀쩡했던 사람이 꼴 보기 싫어지면 당신은 지친 상태다. 그 사람이 미울 리 없는데 자꾸 날이 서면 당신은 나약해진 상태다. 고요한 곳에서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가볍게 목을 축여라. 편안한 곳에 앉아 부풀어오는 폐를 느끼며 호흡하는 거다. 자연이라면 더 좋다. 인간이 아닌 무해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정화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리고 내가 뱉은 말을 후회하자.
모두가 그대로였다. 당신만 아주 잠시 변했을 뿐.
잃어버린 궤도를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하려고 했던 운동, 옷 정리, 창문 열고 청소기 밀기, 읽고 싶었던 책 프롤로그를 읽거나 재료를 꺼내 요리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 등. 하나라도 나를 위한 일을 하면 우울이 말끔히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소하다고 미루지 말길. 그 작은 행동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태어나서 산다는 말을 좋아한다. 왜 사는지를 곱씹다 보면 인간은 금방 우울에 빠진다. 사는 데 휘황찬란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만큼 피로한 게 없다.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를 하듯 태어난 김에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닌가.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같은 생각도 마찬가지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으니 하는 거지 세상에 이유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것. 과한 의미 부여는 모든 걸 덧없이 만든다.
지지부진하지만 마음속에 작은 목표라도 있는 게 좋은 거다. 어떨 때 목표는 내 유일한 희망 같아서 노력을 안 할 수 없게 한다. 정답이 없어도 살아야 하는 현실. 나는 당신이 낭만과 꿈을 어딘가에 가득 심어놓은 것을 안다. 벅차더라도 계속 무언갈 계획해 보자. 아무도 모르게 해도 되고 온 세상에 자랑을 해도 좋다. 계절이 바뀌면 후회보단 결정체가 더 많이 남아있을 거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그걸로 된 거다. 불행에 고꾸라지지 않고 여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가치 있다.
사랑을 시작하면 사소한 취향들이 마구 섞이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이 싫었던 사람이 여우비쯤은 기분 좋게 맞을 수 있게 되고, 식견이 좁던 사람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 음식을 해 먹는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주말에 낮잠을 자는 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서로를 닮아가서일 테다. 사랑은 포용에서 시작되고 안정감으로 견고해진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혼자서 불행을 견디는 방법은 대게 이러하다.
행복을 기대하지 않은 것, 실패한 과거를 떠올리지 않는 것, 남의 하루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 5분이라도 사색에 잠기는 것, 찰나의 감정으로 하루를 망치지 않는 것,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사는 것, 사랑에 냉소하지 않는 것, 잠을 7시간 이상 자는 것, 끼니를 절대 거르지 않는 것, 여행을 계획하는 것, 내면의 감정을 글로 쓰는 것, 억울함을 가지지 않는 것, 계절에 맞는 옷을 사는 것, 주변 정리를 하는 것, 강아지 영상을 보는 것, 발걸음이 가는 곳으로 산책하는 것, 초콜릿을 먹는 것, 결점을 채우는 책을 읽는 것.
당신은 당신이라 예쁘지 그 사람이 예쁘다고 해서 예쁜 게 아니다. 또 당신은 부족하기에 인간다운 것이지, 상대가 별로라고 해서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이 하는 감상에 젖지 말고, 시장의 물건처럼 평가받지 말자. 우린 불꽃처럼 역동적이며 찬란히 빛이 나는 생기 있는 존재다.
아름답다의 '아름' 뜻이 '나'의 뜻을 담고 있듯, 그대가 비로소 모든 껍데기를 벗고 온전히 나일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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