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읽은책

간밤에 읽은 책 | 미로 속 아이

하나의책장 2025. 1.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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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아이

저자 기욤 뮈소

밝은세상

2024-12-17

원제 : Quelqu'un d'autre (2024년)

소설 > 프랑스소설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빛 하늘이 최면을 걸듯이 눈길을 잡아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고 푸른 하늘이다. 요트 위를 맴돌던 한 무리의 갈매기들이 습기라고는 전혀 없는 청명한 대기를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은빛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45피트 요트가 간헐적으로 출렁거린다.

오리아나 디 피에트로는 밀라노에서 항공기에 탑승해 세 시간 전 니스에 도착했다. 그녀는 니스에 내려서자마자 항무관 사무실에 전화해 <루나 블루호>의 출항 준비를 부탁하고 나서 칸으로 직행했다. 이제 곧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요트에서 휴식을 취하며 냉정하게 따져볼 시간이 필요했다.

 

 

오리아나는 다시 플라이 브릿지로 올라가려다가 너무 허둥대는 바람에 사다리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갑판으로 떨어진다. 잠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가 눈을 떴을 때 햇빛을 막고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잠수복을 착용한 괴한은 쇠꼬챙이인지 부지깽이인지 모를 무기를 손에 들고 있다.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오리아나는 괴한의 정체를 알아보았고, 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든다. 그녀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괴한이 휘드른 쇠꼬챙이가 머리와 목을 가격했고, 오리아나는 마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갑판을 적시는 동안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하염없이 울려 퍼진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오리아나 디 피에트로는 저명한 기업가 카를로 디 피에트로의 딸이다. 1984년 6월 18생인 그녀는 이복동생 스테파노보다는 아홉 살 연상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실험영화센터를 졸업한 오리아나는 학창 시절에 모델로 활동했다. 이후에는 2005년 《RAI(이탈리아 공영방송)》에서 지역 문화계 소식을 전하는 프리랜서 기자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뒤 줄곧 해외 특파원을 지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체첸공화국의 전쟁 당시에는 종군기자로 명성을 떨쳤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보코 하람의 반란, 멕시코 정부가 펼친 마약과의 전쟁, 수단 다르푸르에서 자행된 참혹한 인종 학살 등을 다룬 기사를 기고해 세계 전액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현재까지 우발적인 강도 사건이 살인미수로 이어졌다는 추론이 힘을 얻고 있지만 니스 검찰청의 필리프 레클뤼즈 검사는 언론을 통해 잘못 보도되고 있는 몇 가지 정보들을 바로잡았다. 아직 고무보트를 타고 정박해둔 요트로 접근한 다음 몰래 승선한 괴한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고 증언한 사람은 없었다. 참혹한 폭행이 자행되던 날 저녁 시간에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고무보트가 요트를 향해 접근해가고 있었다는 증언은 있었으나 그 어떤 영상 자료로도 확인되지 않았다. 니스 경찰청 강력반 수사팀은 아직 우발적인 강도 사건이었는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피습사건이었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이고,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갑론을박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RAI》에서 기자로 재직 시절 중동의 위험 지역에서 돋보이는 취재 활동을 펼쳐 명성을 얻었고, 이후 출판사를 설립해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둔 오리아나에게 과연 어느 누가 원한을 품고 그토록 참혹한 피습사건을 저질렀는지 아직 전혀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경찰은 오리아나의 휴대폰 사용 기록과 그녀의 가족관계,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을 탐문 수사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1999년에 프랑수아 들로네가 부부 싸움을 하다가 총을 발사해 부인에게 치명상을 입힌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다. 큰 충격을 받고 가출한 아드리앙은 한동안 뉴욕으로 떠나 방황과 일탈의 시기를 보낸다. 4년 동안 이어진 일탈의 시간 동안 아드리앙은 도박장에서 뛰어난 솜씨를 발휘해 돈을 따기도 하고, 재즈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마약에 손을 대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고,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위기를 벗어날 출구를 찾지 못한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간 그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색소폰 연주자 세다 포맨이다.

세다 포맨은 크리스토퍼 가의 재즈바 앞에 쓰러져 있는 아드리앙을 발견한다. 관록의 재즈 연주자인 세다 포맨은 아드리앙을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주는 한편 마약중독 치료에 성공하면 그가 리더로 있는 재즈 사중주단에 넣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스위스의 마약 치료센터에 들어간 아드리앙은 마약 치료와 정신과 치료를 병행한 끝에 악마의 덫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가 오리아나 디 피에트로를 만난 때는 마약중독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직후다.

 

 

“혹시 당신에게는 비밀리에 만나는 연인이 있었습니까?”

“당신들이 한동안 나를 미행하고 다녔으니 이미 답을 알고 있을 텐데요?”

“당신 생각을 말하지 말고, 그냥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혹시 부인을 속인 적이 있습니까?”

“그건 내 사생활이니까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사생활이라니요? 감치 상태인 용의자는 사생활을 내세워 답변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솔제니친의 작품을 읽어보세요. 우리의 자유란 타인이 우리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바탕 위에서 구축되는 겁니다.”

“나는 지금 용의자를 심문하고 있어요. 철학 강의 시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경찰은 수사에 착수한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러 차례 물었으나 성의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경찰과 언론은 나를 유력한 용의자로 취급하고 있고, 나는 일 년이 넘도록 내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죄인처럼 지내왔습니다. 내 아이의 학교 친구들이 ‘네 아빠가 엄마를 죽였대’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입니다. 내 아이들의 눈빛에 나를 향한 의혹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아십니까?”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팀장님은 아이가 없죠?”

“그건 왜 묻죠?”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말하는 게 어렵습니까?”

“아이는 없습니다만 이 일과 무슨 상관이죠?”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 있거든요. 이 세상은 아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은 나를 움직이는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자산가가 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재즈 피아니스트를 직업으로 선택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당신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인을 배우자로 선택했잖습니까?”

“오리아나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당시만 해도 나는 그녀의 부친이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자산가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재산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적이 없거든요.”

“당신은 언론과 인터뷰할 때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왔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하더군요.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백만장자 신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고가의 미술품도 많이 구입하고, 명품 시계도 수집하고, 늘 호사스러운 호텔을 이용하고 있더군요. 당신의 우아한 패션 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명품 옷들을 구입해 입어야 할 테고요.”

쥐스틴 팀장이 의자에서 일어나 아드리앙의 뒤쪽에 가서 선다. 그런 다음 아드리앙이 입고 있는 폴로셔츠의 상표를 그 자리에 동석한 엘 암라니 형사에게 보여준다.

“아슈라프, 자네는 이 폴로셔츠 한 장이 우리가 꼬박 한 달 동안 일하고 받는 월급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야생 라마의 털을 원료로 짠 폴로셔츠거든.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털이라고 하더군.”

쥐스틴 팀장이 엘 암라니 형사에게 폴로셔츠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 동안 아드리앙은 의자를 한 바퀴 돌려 그녀의 손길에서 벗어난다.

“아무리 로로피아나에서 만든 명품이라고는 해도 폴로셔츠 한 장에 3천9백 유로를 받는다는 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들은 이런 명품 옷들을 가리켜 티 나지 않게 럭셔리한 제품이라고 떠들어대지. 보통 사람들은 이런 고가의 폴로셔츠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라.”

 

 

아드리앙은 지적이고 배려심 많고 항상 재미있다. 그는 이번에 출시하는 앨범 전체를 우리의 사랑을 찬미하는 곡으로 채웠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내가 그에게 영감을 준 덕분에 태어난 음악들이라고 한다. 그의 팬들과 비평가들은 이번 앨범을 그가 지금껏 선보인 음악 가운데 최고 걸작이라고 평한다.

우리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여러 계획을 세운다. 아이를 낳고, 배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서고, 몬태나에 농장을 구입하고, 호세 이그나치오에서는 어부의 집을 한 채 사기로 약속한다. 행복의 맛이란 위험하기 그지없다. 난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곁에 있으면 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곳에는 절대로 어두운 밤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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