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저자 찬호께이
위즈덤하우스
2025-04-16
소설 > 추리/미스터리소설
소설 > 중국소설
그 진실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달하는가.
■ 책 속 밑줄
구조대원이 천천히 몸을 돌려 순찰대 경찰 둘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저은 뒤 구급 장비를 둘러멨다. 그리고 들것을 들고 있는 동료에게 그들의 일은 다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네 평쯤 되는 방. 홍콩의 평균 주거 면적으로 보면 꽤 큰 침실에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었다. 책상, 옷장, 침대, 책장 사이마다 골판지 상자와 쓰레기봉투가 처박혀 있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다. 벽에는 애니메이션과 온라인 게임 포스터가 붙어 있고, 어수선한 컴퓨터 책상 위에 게임 캐릭터 피규어와 장식품까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요즘 이런 장난감에 푹 빠진 30~40대 성인 남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키다리는 전체적인 모습으로 볼 때 방 주인이 백수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골판지 상자에 들어 있는 라면과 과자, 컴퓨터 책상 옆에 있는 소형 냉장고, 빈 페트병과 맥주 캔, 간식 포장지가 수북한 쓰레기 더미는 사망자가 먹고 자는 것도 잊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게임을 해왔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였다.
키다리는 이런 사람이 하나 사라져도 무덤덤하기만 한 사회의 냉혹함을 생각했다. 내일 신문에 이 남자의 죽음이 짤막하게라도 실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200자 이내 분량의 기사로 몇몇 인터넷 신문에만 실릴 수도 있다. 타살 혐의점이 없는 자살 사건이었다. 이 소란스러운 도시에는 날마다 다양한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사라져도 사회는 아무 지장 없이 돌아간다.
옷장 안에 크기가 제각각인 원통형 유리병이 스무 개 남짓 놓여 있고, 생체 실험실의 동물 표본처럼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다만 키다리와 아썬의 눈앞에 있는 유리병에 담긴 것은 쥐나 개구리가 아닌, 잘린 팔다리와 장기였다. 인간의 팔다리와 장기.
셰바이천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피해자의 신원을 찾고 그들이 피살된 경위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셰바이천의 살인 동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홍콩이라는 압력솥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병을 안고 있다. 그러다가 압력을 못 이기고 폭발해 머리에서 나사가 빠져버리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데, 이 모든 건 주사위를 던지듯 운에 맡길 뿐이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데 협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을 감추고, 자신과 사회의 연결을 끊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우고, 고독을 끌어안았다.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돕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모두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강자가 되길 바라는 종족이며, 약자를 착취함으로써 쾌감을 얻는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이고 원시적인 의의일 것이다.
사건이 끝나면 모두 잊혀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일에 관여한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달라져 있어요.
때론, 더는 예전의 자신이 아닐 만큼.
■ 끌림의 이유
요즘 <CSI> 전편을 다시 정주행 중이라서 추리소설에 대한 갈증이 깊어져 있었는데,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꾸준히 눈에 띄는 이 책이 문득 궁금해져 읽게 되었습니다.
『고독한 용의자』는 단순히 범죄의 해결을 목표를 하는 추리소설의 외형을 띠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간 심리의 심연을 깊이 파고드는 추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좇는 경찰과 죄의 그림자에 사로잡힌 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은 몰입도를 놓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 소개했듯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를 끝까지 묻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 간밤의 단상
한 맨션에서 토막 시신이 담긴 스물다섯 개의 유리병이 발견됩니다.
방 안에서 숯을 피워자살한 용의자 셰바이천은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온 은둔형 외톨이였습니다.
언론은 곧장 은둔족 살인마라는 네이밍을 붙여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41살의 중년에 무직인 데다 어머니가 해주는 밥만 먹으며 하루종일 게임만 한 인물이라고 하니 심심풀이로 살해하고 자살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어머니 증언으로 인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이천은 20년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요!"
그렇게 쉬유이 경위와 셰바이천의 친구이자 추리소설가인 칸즈위안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각자 수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다만 사건의 단서들이 파편적인데다 시간의 결이 달랐습니다.
더군다나 두 피해자의 사망 시점도 제각각으로 판명되어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고독한 용의자』를 읽고선 새벽 네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실이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에게만 의미있는 게 아닐까.
책은 단순한 미스터리 이상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시체와 추리보단 인간과 고독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순 없다고 하지만, 혼자인 채 어떻게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향했던 방은 피난처일까요? 감옥일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고독을 너무 쉽게 병리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의심하고 쉽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사건이라는 외양 뒤에 숨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즉, 그 안에 깃든 감정의 결을 묻고선 끝까지 기다려줍니다.
읽고 나면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설마라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를 되묻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무서웠고, 더 슬펐습니다.
■ 건넴의 대상
심리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탐색하고 싶은 분
사회적 고립에 관심 있는 분
쉽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를 찾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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