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책과 마주하다』
"만일 원수들을 없앨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나이다."
임진왜란, 7년간의 전쟁을 심판하는 마지막 전투가 펼쳐진다!
저자, 박은우는 역사팩션 작가이자 스릴러 작가로, 『전쟁의 늪』, 『명량』, 『청계산장의 재판』 등을 출간했다.
암살의 위기에 빠진 이순신이라는 기발한 소재를 스릴러 장르에 담은 『전쟁의 늪』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이순신 소설을 집필했다.
이어서 출간된 『명량』은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라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번에 집필한 『노량』은 그의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노량해전의 전말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치열한 격전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가는 스릴러 소설 『청계산장의 재판』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와 계약되어 현지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이순신 장군의 최대, 최후 해전인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 전쟁을 끝냈으며 왜군, 명군 모두 피하고 싶을 만큼의 큰 전투였다.
1597년 10월 17일 직산 전투, 1597년 10월 26일 명량 해전으로 인해 일본군의 가세가 기울여졌고 가망 없는 전쟁에 철수하려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본국으로의 철수를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 다이묘들은 남해안에 왜성들을 짓고 수비하기에 이르렀다.
조명연합군이 일본군의 퇴각로를 차단하려는 공세를 가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 했다.
그러다 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게 된다.
정권을 위임받은 고다이로와 고부교들은 다이묘들에게 공식 철수하라고 명했는데, 적의 전력을 온전히 보내줬다간 재침략을 당할 수도 있거니와 7년 동안 조선 곳곳을 잔악무도하게 유린한 대가를 돌려줘야 했다.
조명연합군이 이 소식에 사로병진책을 세워 공세를 가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598년 12월 초, 고니시는 진린과 이순신에게 연락선만이라도 다닐 수 있게 해달라며 뇌물을 보냈는데 이에 이순신은 사신을 죽이려다 참았지만 진린은 일본군 4명이 탄 고니시의 연락선 1척을 허용하며 포위망을 통과하게 했다.
이에 격노한 이순신이 추격을 명해 한산도까지 추격했지만 결국 연락선을 놓쳤다.
한편 연락을 받은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고성의 타치바나 무네시게, 남해의 소 요시토시(고니시의 사위), 부산의 테라자와 히로타카에게 남해 창선도로 소집령을 내린다.
이로 인해 순천의 일본군, 창선도의 일본군 사이에 조명연합군이 도리어 포위된 처지에 놓이게 된다.
1598년 12월 15일 늦은 오후, 이순신은 진린과 함께 출전하게 된다.
진린과 등자룡은 이순신이 선물한 판옥선 2척에 나눠 타고 출전했으며 그 뒤를 사선, 호선들이 뒤따랐다.
당시 함대를 서쪽의 순천왜성을 위장공격하려는 극소수의 위장함대, 동쪽의 노량해협을 포위하려는 본함대와 복병함대로 나누었다.
1598년 12월 15일 늦은 밤, 이순신의 위장함대가 서쪽의 순천왜성을 무너뜨릴듯 포격하며 상륙할 것처럼 위장했다.
이에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이 연락선이 나간 것을 알아 구원군이 오기 전에 순천왜성을 끝장내려는 것으로 해석해 봉화 수준이 아닌 산을 불태우며 당시의 긴급함을 알렸다.
창선도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조선 수군이 노량 쪽을 막지 않고 순천 쪽으로 갔다고 해석하며 노량해협을 신속히 통과하기로 결정한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0~2시
일본 함대가 창선도를 출발해 노량해협을 통과하자 조선 복병 함대가 기습 포격하며 해전이 시작되었다. 조선 수군이 순천 쪽에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일본 수군은 당황하였다. 수 척의 일본 함선이 격침될 쯤 시마즈는 복병 함대의 수가 적음을 파악하고 이들을 포위하려 했다.
그러자 죽도 부근에 매복하던 명나라 함대가 합류했다.
진린의 판옥선은 도독기를 높이 올리고 북을 치며 진격했으며 등자룡의 판옥선은 불랑기포와 호준포를 쏘며 돌격했다.
조선 복병 함대는 기습 외에도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명나라 수군을 호위하는 임무 또한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 함대의 움직임에 맞추어 공격하였다.
전면전도, 다시 되돌아가기도 불가했기에 시마즈는 빨리 전진하기를 선택한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2~4시
일본 함대가 관음포까지 전진했을 때, 이순신의 조선 수군 본 함대가 등장하며 일본 함대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조선 본 함대는 첨자찰진(삼각형의 돌격형)으로 경상우수사 이순신(무의공)을 선봉장으로 어린진(전방이 두터운 방어형)으로 전진하던 일본 수군의 옆면에 등장해 파고 들어 지휘부 쪽을 위협하자, 지휘부의 수호를 최우선하는 일본 함대가 큰 혼란에 빠졌다.
때마침 부는 북서풍을 이용해, 조명연합군이 화공(불화살, 신기전, 불 붙은 짚섬)까지 가했다.
순천왜성 쪽의 고니시 유키나가도 위장함대에 속은 것을 알고 군영을 철수해 배를 출발시켰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4~6시
일본의 선봉대가 불능에 빠졌을 무렵, 시마즈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명나라 수군 방향으로 포위망을 벗어나자고 총공세를 명령한다. 이에 아직 전력이 보존 된 중위-후위 병력들이 빠르게 돌진했다.
때마침 등자룡의 판옥선이 명나라 아군이 잘못 쏜 포에 의해 불이 났다. 일본 함대가 여기로 공격을 집중하자 결국 등자룡이 전사하고 판옥선은 불타버린다.
명군 파총 심리가 등자룡의 배를 구하러 달려들었으나 이미 늦은 지 오래였다.
이 여세를 몰아 일본군은 진린의 판옥선에도 달려들었으나, 이순신의 본 함대가 또 다시 진린을 구원하였다.
명나라 수군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의 본 함대는 일본 수군 중앙을 파고들던 첨자찰진에서 점차 포위진으로 변경되었고, 이후 근접한 일본 함대에 포격을 가하며 포위망을 조이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야간이었기에 전함식별 및 조준이 어려워 평소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 화포발사를 해야 했고, 근접전/백병전도 자주 발생했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6~8시
명나라 수군 방향으로 돌파가 무산된 상황에서, 바닷물의 방향이 바뀌었다. 야간이라 방향을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 수군은 바뀐 물의 방향을 따르면 다시 노량해협을 지나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으나, 관음포 앞바다의 파도는 관음포 만으로 향하는 것이었고, 일본 수군은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조명연합군은 관음포 입구에 정렬해 입구를 철저히 봉쇄하고 포위섬멸하려 하고, 일본 수군 역시 죽기살기로 관음포를 다시 나가기 위해 최후의 발악으로 달려든다.
순천왜성의 고니시는 해가 밝은 뒤 시마즈의 구원함대가 대패하는 것이 보이자 먼 바다로 도망쳤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8~10시
일본 수군은 이순신의 대장선 방향으로 탈출하려 하는데 이순신을 비롯해 전라좌수군이 직접 돌파를 시도하는 선박들을 추격해 포위한다.
일본군 선두의 시마즈 요시히로의 대장선이 결국 반파되자 일본군 후방의 타치바나 무네시게 군이 관음포를 또 빠져나와 난전이 발생하였고 덕분에 시마즈 요시히로도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이 난전으로 인해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많은 장수들이 전사하였다.
무술년 9월에서 11월까지의 기록으로, 픽션이 가미된 소설이다.
기적과도 같은 승전이나 다름없었던 명량 대첩 이후, 군사와 물자가 부족했던 실정이었다.
당시 이순신은 백성들이 안심하고 바다를 통행하며 생산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결과적으로 군량이 충족되니 부족한 군사를 빠르게 모을 수 있었다.
이는 오롯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왕과 조정 대신들에게는 눈엣가시였으리라.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했다 할지라도 그 이후에는 쓸모없는 존재 혹은 두려움의 존재로 기피되기 때문에 숙청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던 시대였다.
다행히 명의 황제 신종이 이순신에게 면사첩을 내리는 동시에 중국에서 파병한 수군총사령관인 도독 진린과 같은 계급인 대명수군도독으로 임명했으니 아니꼽더라도 왕과 조정 대신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전란의 원흉인 풍신수길 사망하자 본국으로 귀환을 준비하는 왜군.
구원병으로 왔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명군.
승리를 바라지만 그만큼 자신보다 그 위치가 높아질까 경계의 날을 세우는 조선의 왕.
오롯이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에게 있어서 모든 이들이 나름의 의미를 가진 적이라 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송군관이 총에 맞았다!"
이순신이 송희립을 찾아보려는 순간 총탄 한 발이 그의 왼쪽 가슴을 뚫었다.
감았던 눈을 뜨니 흐릿한 시야 속에 여러 얼굴들이 나타났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자 병사들이 귀를 가져다 댔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아라."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사기가 저하될 수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었다.
으레 버릇이 되어 픽션이 가미된 역사소설을 보게 될 때면 꼭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본 후 책을 펼친다.
결말을 알기에 영화 「명량」은 봤지만 「노량」이 작년에 개봉했어도 보질 못했었다.
작년에 여행을 다녀오며 사진으로 남겨두었던 거북선과 푸르르게 펼쳐진 바다를 다시 보고 나니 감사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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