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새벽에 들은 노래 | 노벨문학상 한강시집 현대시 새벽에 들은 노래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봄은 봄 숨은 숨 넋은 넋 나는 입술을 다문다 어디까지 번져가는 거야? 어디까지 스며드는 거야?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 다시는 함께읽는시집 2024.10.25
간밤에 읽은 책 | 서로가 꽃 서로가 꽃우리는 서로가꽃이고 기도다나 없을 때 너보고 싶었지?생각 많이 났지?나 아플 때 너걱정됐지?기도하고 싶었지?그건 나도 그래우리는 서로가기도이고 꽃이다 제비꽃 그대 떠난 자리에나 혼자 남아쓸쓸한 날제비꽃이 피었습니다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피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사랑이 아니다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사랑이 아니다금방 듣고 또 들어도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이 목소리 들었던가……서툰 것만이 사랑이다낯선 것만이 사랑이다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다시 한번 태어나고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다시 한번 죽는다. 첫눈 같은멀리서 머뭇거리만 한다기다려도 쉽게 오지 않는다와서는 잠시 있다가.. 간밤에읽은책 2024.09.29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 현대시 투쟁시 짧은시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살아오는 삶의 아픔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서툰 솜씨로쓴다.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함께읽는시집 2024.09.10
나태주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 나태주시 사랑시 짧은시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사랑이 아니다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 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사랑이 아니다금방 듣고 또 들어도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이 목소리 들었던가……서툰 것만이 사랑이다낯선 것만이 사랑이다 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다시 한번 태어나고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다시 한번 죽는다. 함께읽는시집 2024.09.05
고은 머슴 대길이 | 현대시 짧은시 좋은시 머슴 대길이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상머슴으로누룩 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머슴방 등잔불 아래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어린 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읽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흩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 함께읽는시집 2024.08.19
박준 유월의 독서 | 짧은시 좋은시 유월의 독서 그림자가먼저 달려드는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불을 끄지 못하는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작고 새카만 점에서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울 수도 있을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유월이 오도록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그 집의 불빛은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제 눈 속 가득 찬 물기들을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눈이 자꾸 부시던유월이었다 함께읽는시집 2024.07.27
이상 오감도 시제 1호 | 난해시 오감도 시제 1호 13인의아해(兒亥)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 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느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 함께읽는시집 2024.07.21
나태주 혼자서 | 좋은시 서정시 짧은시 혼자서 하이얀 티셔츠 차림으로미루나무 숲길에서 온종일 서성이고 싶은 날은깊은 산골짜기 새로 돋은 신록 속에 앉아 있어도안개 자욱 개구리 울음소리 속에 앉아 있어도귀로는 연신머언 바다 물결 소리를 듣는답니다 아야, 아야, 아야, 아야,산 너무 산 너머서흰 구름 생겨나고 죽어가는 소리를 듣는답니다 바다에는 지금하얀 돛폭을 세워 떠나가는돛단배가 한 척. 함께읽는시집 2024.07.15
나태주 늦여름 | 사랑시 좋은시 서정시 짧은시 늦여름 네가 예뻐서지구가 예쁘다 네가 예뻐서세상이 다 예쁘다 벗은 발 에쁜 발가락그리고 눈썹 네가 예뻐서나까지도 예쁘다 함께읽는시집 202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