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는시집

박준 유월의 독서 | 짧은시 좋은시

하나의책장 2024. 7. 27. 09:00
반응형

 

 

 

유월의 독서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

제 눈 속 가득 찬 물기들을

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