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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베스트셀러 22

김영랑 오월 | 김영랑시 서정시 짧은시

오월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바람은 넘실 천 이랑 만 이랑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암컷이라 쫓길 뿐수놈이라 쫓을 뿐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함께읽는시집 2024.08.20

고은 머슴 대길이 | 현대시 짧은시 좋은시

머슴 대길이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상머슴으로누룩 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머슴방 등잔불 아래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어린 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읽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흩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

함께읽는시집 2024.08.19

이해인 꽃멀미 | 이해인수녀 짧은시 좋은시

꽃멀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있는 것은 아픈 것,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함께읽는시집 2024.08.03

안미옥 여름 끝물 | 현대시

여름 끝물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중력 공간에 두 눈을 두고 온 사람처럼무엇을 보려고 해도마음만큼 볼 수 없어서 그렇게 두 손도 두 발도전부 두고 온 사람으로 있다고 한다면 쓰지 않는 시간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이해가 될까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한껏 울창해져서어김없이 돌아오는 여름 불행과 고통에 대해선 웃는 얼굴로밖에 말할 수 없어서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 절반쯤 남은 물통엔 새의 날개가 녹아 있었다 걸을 때마다 여름 열매들이 발에 밟혔다언제부터 열매라는 말에 이토록 촘촘한 가시가 들어 있었을까 다정한 얼굴녹아버리는 것밟히는 것 그해의 맨 나중에 나는 것 우는 사람에겐 더 큰 눈물을 선물하고 싶다어느 것이 자신의 것인지 모르게

함께읽는시집 2024.07.22

간밤에 읽은 책 | 창비시선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저자 신경림창비2024-03-29시 > 한국시    책 _김수영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지요. 까만 표지에 손바닥만 한 작은 책이지요. 첫장을 넘기면 눈이 내리곤 하지요. 바람도 잠든 숲속, 잠든 현사시나무들 투명한 물관만 깨어 있었지요. 가장 크고 우람한 현사시나무 밑에 당신은 멈추었지요. 당신이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자 비로소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요. 어디에든 닿기만 하면 녹아버리는 눈. 그때쯤 해서 꽃눈이 깨어났겠지요. 때늦은 봄눈이었구요, 눈은 밤마다 빛나는 구슬이었지요. 나는 한때 사랑의 시들이 씌어진 책을 가지고 있었지요. 모서리가 나들나들 닳은 옛날 책이지요. 읽는 순간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아름다운 구절들로 가득 차 있는 아주 작은 책이었지요.    단 한번..

카테고리 없음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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