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읽는시집

안미옥 여름 끝물 | 현대시

하나의책장 2024. 7. 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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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물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중력 공간에 두 눈을 두고 온 사람처럼

무엇을 보려고 해도

마음만큼 볼 수 없어서

 

그렇게 두 손도 두 발도

전부 두고 온 사람으로 있다고 한다면

 

쓰지 않는 시간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

이해가 될까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한껏 울창해져서

어김없이 돌아오는 여름

 

불행과 고통에 대해선 웃는 얼굴로밖에 말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

 

절반쯤 남은 물통엔 새의 날개가 녹아 있었다

 

걸을 때마다 여름 열매들이 발에 밟혔다

언제부터 열매라는 말에

 

이토록 촘촘한 가시가 들어 있었을까

 

다정한 얼굴

녹아버리는 것

밟히는 것

 

그해의 맨 나중에 나는 것

 

우는 사람에겐 더 큰 눈물을 선물하고 싶다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인지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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