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저자 채사장
웨일북
2024-12-24
인문학 > 교양 인문학
가끔은 궁금하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혼란스럽고 주저앉고 싶은데, 어떻게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바쁘게 걸음을 옮길 수가 있는 걸까? 모두가 삶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상에 빠진 자가 현실을 보지 못하듯, 현실에 빠진 자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유물론과 과학이 정신적인 요소를 완벽히 배제함으로써 얻은 것은 무모순성이다. 모든 신념이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언제나 무모순적일 수 있듯, 경험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유물론과 과학은 물질의 울타리 안에서 완벽히 무모순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대중으로 하여금 유물론과 과학이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객관적인 진리라고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세계를 축소했다고 할 수 있다. 무모순성의 영광은 정신과 관련된 모든 가치를 세상 밖으로 쫓아냄으로써 얻게 된 반쪽짜리 승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얻게 된 승리는 오늘날의 학계와 대중의 유물론 편향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데도 무언가 부족하다. 더 많은 콘텐츠를 욕망하게 되고 그것을 향유하지만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이 갈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디어의 형식에 따라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짧은 길이의 미디어는 당연하게도 긴 길이의 콘텐츠를 담아낼 수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소비자가 극도로 많은 양의 콘텐츠를 접하게 되지만 동시에 극히 제한된 콘텐츠만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머릿속을 정돈하려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생각의 반복을 끊어내는 일이다.
마음이 어지럽고 스스로 자극에 취약하다 느끼는 것은 실제로 당신이 취약해서가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든 당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으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극에 쉽게 휘둘리고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반면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그 자극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그것과 적절한 거리를 두려 한다.
바다를 보라. 행복, 분노, 질투, 혼란, 우울, 쾌락, 즐거움. 이 모든 감정의 파도는 바다의 표면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 모든 파도의 바탕이 되는 깊은 마음의 심해, 텅 비어 있음은 파도치지 않고 흐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깊게 침묵한 이유는 이 움직이지 않는 심해에 닿기 위해서다. 이제 이곳에 이르렀고 이곳이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고요와 평온이다. 사람들은 고요와 평온도 감정의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요와 평온은 인간적 감정에서 비롯된 무엇이 아니라 마음의 본질적 상태다. 이것은 바탕이자 배경으로, 모든 인간적 감정은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인간을 가장 좋아하고 인간을 가장 미워한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으로 가득하다. 당신이 종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을 한걸음 떨어져서 보라.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나? 당신은 종일 이 사람의 얼굴과 저 사람의 얼굴, 이 사람의 신체와 저 사람의 신체를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은 종일 인간의 말과 글을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은 종일 인간의 사물을 들여다보며 좋아하고 미워한다. 당신의 의식 세계는 인간으로 가득하다. 당신은 인간이었고 인간이며 인간으로 돌아올 것이다.
꿈이 환영인 것처럼 현실도 환영이라는 진실이 우리를 반드시 무기력과 허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같은 깨달음에도 어떤 이는 이 순간이 환영이라는 진실을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연결한다. 꽃이 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꽃병에 꽂아두듯, 그는 환영처럼 사라질 현실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현실이 환영이고 유한하다는 것은 존재론적 사실이지만, 그것을 무기력으로 연결할지 혹은 긍정적으로 수용할지는 주관적 해석이다. 삶을 허무로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 해도, 삶이 영원하다 해도 그것이 가치 없고 무의미하다 평가할 것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 해도, 삶이 영원하다 해도 그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 평가할 것이다. 현실이 환영임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저 삶에 너무 빠져들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시야가 좁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극단적인 평가에 익숙하다. 그들은 좋아 보이면 긍정하고 나빠 보이면 부정한다. 매력적이면 끌어당기고 혐오하면 밀어낸다. 눈에 보이면 있다고 생각하고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는 실재라고 생각하고 부재는 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판단해버리는 이유는 이들의 사유가 거칠어서다. 하지만 세계의 실상은 언제나 섬세하다. 세상을 섬세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충분한 지혜가 요구된다. 미각이 섬세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달고 짠 맛에만 끌리듯, 지혜가 섬세하지 않으면 극단적 사유에 쉽게 이끌린다.
말과 판단은 언제나 어리석음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말의 본질은 세계를 분절하는 것이고 판단은 언제나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 분할이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는 분절되어 있지 않고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의 실상을 보는 사람은 말을 줄이고 판단을 멈춘다. 우리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워지는 방법은 말과 판단을 멀리하는 것이다.
물질은 중독적이기에 당신이 그것을 너무 적게 가질수록, 또는 너무 많이 가질수록 그것을 더 사랑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물질이 필요한가? 그것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샤워를 할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찬물과 더운물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온도를 맞추듯,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정도의 물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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