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책과 마주하다』
터무니없는 일본 주장과 조직적 은폐·축소를 객관적 자료에 의해 낱낱이 밝히다!
저자, 박경민은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금융기관 지점장과 사외이사, 중견그룹 기획조정실장과 계열사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컨설팅회사 모젤스(주) 대표이다.
바쁜 현역 생활 중에도 역사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는 건강문제로 수년간 쉬게 되는데 이 때를 계기 삼아 본격적인 역사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학교 역사시간에 앵무새처럼 배운 대로 이미 익숙해져 버린 한일 근대사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책은 사건 순으로 내용이 진행되는데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던 해인 1894년을 살짝 짚어보려고 한다.
1894년하면 자연스레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동학농민운동 기간 중 벌어졌던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이다.
1894.01.10 - 전봉준의 고부 봉기
1894.05.11 - 동학 농민군 황토재 전투 승리
1894.05.31 - 동학 농민군 전주성 점령
1894.06.01 - 고통의 청군 파병 원세개에게 구두 요청
1894.06.02 - 일본 정부의 의회 해산 및 조선 파병 결정
1894.06.03 - 고종의 청군 파병 공문 발송
1894.06.08 - 청군 아산만 도착 시작
1894.06.03 - 전주화약으로 농민군 해산 & 일본군 인천항 도착 시작
1894.07.23 -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1894.07.27 - 일본공사관과 대원군 주도로 군국기무처 설치
1894.07.27 - 갑오개혁 개시
1894.08.01 - 청일전쟁 선전포고
1894년에 벌어졌던 사건들의 흐름과 주요 내용들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세세하게 파헤쳐 보니 일본이 경복궁 점령을 발판 삼아 청일전쟁과 갑오개혁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었다.
…… 경복궁 점령 사건이 오랜 기간 이렇게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사유를 곰곰 돌이켜 보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발표하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이 사건의 성격에 관한 입장, 즉 총격적을 거쳐 조선군을 쫓아내고 경복궁을 점령한 것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한 것과 이를 학계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온 것이 더 큰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 기간에 일본군은 대규모 파병을 행했고 파병 후 장기 주둔하기 위해 어떻게든 명분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책에서도 나와있듯이 그간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고집하는 우발적 사건이라는 주장은 역시 억지나 다름없어 보인다.
일부 일본인에 의해 양심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도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모양새를 보면.
12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정부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국정 교과서에 실린 명백한 조작 내용과 오류는 개선되었지만, 검인정 교과서에는 여전히 일본 위주의 자의적 해석이 존재한다.
특히 청일전쟁은 당시 서구열강들로부터 같은 레벨의 열강으로 인정받았다고 기술되고 있다.
국제법을 준수하는 근대국가로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다보니, 지금까지도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배우는 일본인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까지 일본이 국제법을 잘 준수한 모범적인 근대국가라 알고 있는 것이다.
청일 간의 직접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무쓰 무네미쓰는 오토리 공사에게 조선에서의 실질적 이권확보를 지시한다.
오토리는 조선에 내정개혁은 권고하면서도 이에 대해 거부할 경우를 대비해 두 가지 안을 본국에 올리며 훈령을 요청하게 되는데, 두 가지 안 모두 성의 출입문과 왕궁의 문을 일본군이 점령해야 한다는 군사적 조치도 포함하고 있었다.
'군대로 경성의 각대문을 경비하고 왕궁의 문을 지킨다.'
'군사력으로 문 안팎의 공간을 제압하여 지배력을 확보한다.'
왕궁을 제압하지 않고 어떻게 왕궁 문을 지킨다는 것인가?
즉, 한성과 경복궁을 무력 즉, 군사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내용이 길어져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협상의 과정에 대해서는 생략하겠지만)
계속되는 회담 속에서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한 그들의 마지막 결정은 결국 경복궁 점령이었다.
경복궁 점령은 엄연히 군과 정부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계획적인 군사행동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이를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공식입장은 이렇다.
먼저 발포한 조선 병사와의 우발적인 충돌에서 시작되었고,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응전하다가 왕궁에 들어가 국왕을 보호까지 하게 되었으며,
소규모 충돌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의 내정개혁을 위해 바로 청일전쟁을 일으켜 명분을 쌓은 게 훤히 보이는데 그들 눈에만 안 보인다는 것이 참으로 희한하다.
이렇듯 책에서는 정확한 객관적 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주장했던 주장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보여준다.
지리적 거리로는 가깝지만 역사적 거리로는 너무나 먼 일본.
근래 국방부가 장병 정신교육 자료에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데에 큰 논란이 있었는데, 공영방송인 KBS가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 안에 독도가 들어간 그래픽 지도를 사용한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었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질수록 드는 생각은 단 하나다.
역사에 대해 더욱 더 관심을 가지고 정확하게 알고 파악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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