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박준시인 2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시 짧은시 좋은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라믈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7.27

박준 유월의 독서 | 짧은시 좋은시

유월의 독서 ​그림자가먼저 달려드는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불을 끄지 못하는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작고 새카만 점에서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울 수도 있을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유월이 오도록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그 집의 불빛은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제 눈 속 가득 찬 물기들을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눈이 자꾸 부시던유월이었다

함께읽는시집 2024.07.2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