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읽은책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 간밤에 읽은 책, 오늘 새벽엔 이 문장이 남았다

하나의책장 2025. 6.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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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저자 슈테판 셰퍼

서삼독

2025-05-16

원제 : 25 Letzte Sommer

소설 > 독일소설

 

 

 

삶은 계절처럼, 그 끝보다 또 다른 시작을 기억하게 합니다.

 

 

 

■ 책 속 밑줄

 

주말이면 자연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건 특권이었지만, 오늘처럼 이곳에서조차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나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일이 드물었고 그조차 대개 몇 분 가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나 일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어서 마음이 고요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행복하게 여겼는데, 경력이 쌓이고 휴대폰을 신형으로 바꿀 때마다 나는 점점 더 어디서나 연락이 닿고 매사에 이용 가능한 사람으로 변해 갔다.

 

 

언제나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마치 인생이라는 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끝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라는 듯이.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어디서 길을 꺾었는지 기억해 두는 일도 없이 30분쯤 걸었다. 하지만 답답하고 부담스러운 한 가지 사실만 확실해졌다. 살면서 어디선가 길을 잘못 꺾었고, 영혼의 나침반을 잃었다는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행복하고 자유로웠고, 사생활에서든 직업에서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었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의무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자유는 점점 줄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그렇게 되어 있었다. 나는 일과 인정 욕구, 돈벌이를 삶의 중심에 두는 데 최적화된 사람이 되어 갔다. 나 자신에게 엄격해지고 만족하는 일이 드물어졌으며, 매사에 느긋하지 못하고 단호해졌다. 마감 시각, 그리고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의 기대에 쫓겨 살았다. 가진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한 것을 원했다.

 

 

지친 사람의 뇌에서는 생각이 늘 같은 경로를 맴도는데, 그 악순환을 깨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가끔은 반드시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 숲과 우리 가족 별장 사이에 있는 조용한 호수가 떠올랐다.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뿐, 그곳에서 아침 일찍 수영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수영복도 수건도 없고 물도 너무 차가웠다. 하지만 그게 일상에 서 벗어나게 해주는 소소한 모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음 생에서는 실수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더는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고, 더 느긋하게 지낼 것이다.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정신 나간 상태로, 많은 일을 심각하지 않게 여길 것이다. 그다지 건강하게만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많은 해넘이를 바라보고, 산에 더 많이 오르고, 강을 더 자주 헤엄칠 것이다. 나는 매 순간을 낭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똑똑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물론 즐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순간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 삶이 오로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아직 모른다면 지금 이 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나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다닐 것이다. 생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이들과 더 많이 놀 것이다.

 

 

나는 왜 나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나?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사람이나 일 대신, 돈을 벌기 위한 일로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던가?

하지만 이런 질문도 있었어요.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 왜 스스로에게 더 자주 허락하지 않았을까?

왜 살면서 더 이상 모험을 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고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났으랴?

 

 

게다가 전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오랫동안 소홀히 했던 근육을 쓸 때처럼 인내와 절약과 결핍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면서요. 모든 것이 언제나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 같은 요즘 세상에서는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특히나 소중하죠.

 

 

스물다섯 번의 여름.

이 하나의 단어, 이 하나의 숫자. 여기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었다.

내가 눈을 감았을 때, 사방이 완벽하게 조용했다.

 

 

넓은 바다는 인간이 그저 잠깐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물거품에 불과하다는 걸 가르쳐주죠. 누구나 물속보다 물 위에 더 오래 머물기를 원해요. 하지만 주치의와 계속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결국 가라앉았을 거예요. 그가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을 해준 거죠. 그 말이 완전한 길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효과가 있었어요.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고요. 그건 배울 수도 없고, 그 어떤 의료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는 치료법이에요. 그들은 이 세계를 현명하게 떠받치는 조용한 영웅이었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 순간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오늘은 어떠세요?"

카를의 대답은 두 문장뿐이었다. "인생에서 이 이상 뭘 더 바랄 수 있겠어요. 지금 이대로 좋아요."

나는 이제 정말로 완벽하게 할 말을 잃었다.

 

 

우리가 남은 계절을 헤아릴 때, 비로소 오늘의 온기와 추위가 전해주는 가치가 선명해진다.

 

 

■ 끌림의 이유

 

이 소설은 정석적인 삶을 살아오던 40대 남자 주인공이 시골에서 우연히 만난 은둔 농부 카를을 통해 멈추는 법부터 느끼는 법, 돌아보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성공과 효율에 매달리며 잃어버린 순수한 순간들을 다시 발견하는 여정이 마음 깊은 곳을 울렸으며 남은 계절을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르도록 초대하는 메시지가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특히 책은 소설이지만 인문 에세이의 느낌도 줄 만큼 마음 속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 간밤의 단상

 

이른 새벽, 호수 위 빛이 잔잔히 흔들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주인공처럼 저도 어느 순간부터 이미 살아온 삶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카를과 마주하며 가장 소중한 꿈은 무엇인지, 모험할 용기는 아직 남았는지, 삶의 기준이 나를 위한 것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들을 떠올리는 순간, 남은 삶을 어디에 집중할지에 대한 확신이 조금씩 선명해졌습니다.

 

당신은 주어진 남은 계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세상이 규정지은 인생의 정석에 맞춰 외부의 요구에 따라 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길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죠.

방에서 나와 현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깜깜한 어둠이 어느새 푸르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곧 해가 뜨기 위해 준비하는 새벽녘, 저는 제 안의 계절을 좀 더 알아가며 차분하게 걸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P.S.

제가 예전부터 끄적이던 글들을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몇몇 주제는 책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으니 에세이도 꼭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brunchbook/hanainbloom

구독과 라이킷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건넴의 대상

 

지금 지나온 시간보다 남은 하루하루에 마음이 가는 분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르고 싶은 분

남은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그려보고 싶은 분

문장으로 계절과 마음의 결을 함께 느끼며 읽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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